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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갈 순 없잖아, 맞설 수 있다고!. 인간,신해철

by 쭌's 2008. 3. 20.
도망갈 순 없잖아, 맞설 수 있다고!. 인간,신해철
 
 



"도망갈 순 없잖아, 맞설 수 있다고!."



“도대체 사진은 왜 안 찍겠다는 거요?” “포즈 잡고 사진 찍는 게 고역 중에 고역인데, 이 나이에 하기 싫은 것까지 하면서 살 필요가 뭐 있수?” “그럼 앞으로도 안 찍겠네?” “앞으로 8kg 남았거든. 다 빼고 나면 아마 보도자료 돌릴 테니, 그때 와서 찍으슈.” 가수 신해철이 입을 열었다. 스물다섯 개의 질문을 던지는 M25의 인터뷰가 차고 넘쳤다.

에디터 안재형  사진 싸이렌엔터테인먼트



오랜만에 홀로 인터뷰에 나섰다. 사진은 절대 안 찍겠다는 고집에 녹음기 하나 달랑 들고 도착한 사무실은 장엄하다 못해 육중했다. 세트장에나 어울릴 법한 어두운 조명, 삼면을 두른 책장, 남은 한 면을 차지한 프로젝터, 책장 한 켠에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위스키 서너 병. 옆 사무실과 통하는지 불쑥 들어선 신해철은 사무실을 빙 두른 소파에 앉자마자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곳은 그러니까 그가 후배 뮤지션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일종의 사랑방인 셈이다. “어, 출판사에서 문자가 왔네요. 방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고. 이거 좋아해야 하나. 캬캬.” 인터뷰 안 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7차례나 인터뷰한 기록을 묶어 <쾌변독설>이란 책을 낸 것도 의외지만 그 책이 발행 당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니, 말 다했다. 대형서점에서 열린 사인회에는 10대 청소년부터 40~50대 중장년층까지 줄을 섰다나 뭐라나. 그렇게 신해철은 늘 대중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무 살의 나이에 데뷔해 곧바로 스타덤에 오른 뒤, 20년 동안 단 한순간도 변방에 유배된 기억이 없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노래만 한 건 아니다.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을 진행하며 ‘마왕’이란 별명을 얻었고, 그 방송을 인터넷 회원제로 운영하며 지속적인 논란을 낳았다. 표준어, 비속어를 가리지 않는 그의 방송은 “속이 후련하다”란 반응과 “웬 독설이냐”는 반응이 늘 쌍심지를 돋우고 부딪친다. 언론에서도 기사화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를 놓지 않는 그는 그래서 항상 중심에 서있다. 도대체 활동이 활발한 연예인의 이름이 왜 신문 사회면에 빈번하게 오르는 것일까. 그는 “입을 다물기엔 이미 늦었다”며 인간 신해철을 이야기했다.

내 신조는 얕고 넓게 살자다

어디 안 좋은가. 몸이 아파 보이는데.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누가 가자고 졸라서 스키장에 갔다가 팔이 빠졌다. 건방지게 최상급 코스에 올라갔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지. 

인터뷰집이 벌써 베스트셀러다. 직접 느끼는 반응은 어떤가.
으흐흐흐. 출판사에서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광고도 크게 때리데. 며칠 전에 글 쓰는 지인들과 술을 한잔 했는데, 판매 부수를 보더니 대박 났다고 축하하더라고. 음악 하는 놈이 그것도 내가 쓴 게 아니라 인터뷰집인데 축하받아야 하는 건지.(웃음) 계면쩍긴 하지만 기분 나쁘진 않다. 

그러게 직접 쓴 게 아닌데 인세는 어떻게 나누나.
음… 그게, 아니 근데 수입에 대한 질문은 무례 아닌가.(웃음) 쓴 분하고 공동으로 하겠지 뭐.  인터뷰를 잘 안 하는 걸로 아는데 웬 인터뷰집인가. 인터뷰어가 제대로 파악하고 질문을 던지면 즐거운 것이고 도대체 저 질문에 무슨 답을 해야 하나, 하게 되면 괴롭다. 인터뷰집은 마침 내가 쓰던 책이 슬럼프에 빠져서 헤매고 있을 때 제안이 들어왔다. 글을 쓰려니까 좀 방어적이 되더라고. 행여나 하는 마음에 쓰는 속도도 느려지고. 잘됐다 싶었지. 쓰려던 것과 내용도 비슷하고 노가리만 풀면 전문가가 정리해 줄 테니 날로 먹자 했다.(웃음) 

내용이 굉장히 광범위하다. 도대체 관심 분야가 뭔가.
내 인생 신조가 얕고 넓게 살자다. 음악도 여러 장르에 걸쳐 실험하고 한 가지를 진득하게 파지 않거든.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재미있어서 그런 거지. 살다보면 다 재미있는데 안 하고 지나갈 순 없으니까. 그리고 라디오DJ를 한 게 근 10년이 넘었는데 어설퍼도 방송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길 하면 댓글이 한가득이다. 그럼 난 가만히 앉아서 수십만 명에게 교육을 받는 거지. 그러니 전문 분야는 없고 잡식만 있다.(웃음) 

각 분야에 기본 이상이라던데.
기본? 음… 그렇진 않은데. 그렇게 보이도록 말하는 법을 터득한 거지.(웃음) 어떤 분야의 사람을 만나도 대화는 되는 것 같다. 안 되면 내가 들으면 되니까. 어릴 때부터 선배들에게 난독한다고 많이 혼났는데 그게 서른다섯 즈음 되니까 서로 연관성을 갖게 되더라고. 분명 인문과학이었는데 자연과학과 연결되고, 그 시기부터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



입을 다물기엔 이미 늦었다

사무실을 둘러가며 책이 꽂혔는데, 다 읽은 건가?
안 본 책도 몇 권 있다. 여기에 있고 집에 있고 유학하면서 갖고 있던 건 친구 집에 맡겨놨고 전 세계에 퍼져있다. 웃긴 건 책은 있는데 정작 CD는 몇 개 없다. 

가수가 CD는 없다니. 왜?
원래 CD를 험하게 다루는 데다 빌려 달라는 놈 있으면 다 빌려 주거든. 가져간 놈은 있어도 가져온 놈이 없다. 그래서 요즘에는 좀 치사하더라도 MP3로 변환했다. 또 어려서부터 DJ를 했더니 방송국 레코드실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어서 딱히 돈 내고 산다는 게.(웃음) 물론 엄청나게 사재꼈지. 분명 5000장 이상 샀는데 한 300장 남아있다. 

책을 많이 읽어서인가. 달변을 꼽으라면 당신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난 사실 최소한의 발언만 하면서 살고 싶다. 그냥 편하게 한 얘기까지 기사화되며 인터넷에 떠돈다. 그러니 내가 사회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절규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난 그런 게 정말 싫다. 난 그냥 우리 고스트스테이션 식구들과 대화하는 것뿐이거든. 그런데 정말 떠벌이가 되고 있다.(웃음) 그렇다고 말을 안 하고 살수도 없고 좋아하는 DJ를 그만둘 수도 없고. 요즘엔 기사 쓴다고 코멘트 요청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 참. 음악 얘기도 아니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음악 하는 놈이 음악으로 얘기해야지 자꾸만 선후가 뒤바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대중이 주시한다는 방증일 텐데.
그런 면에서는 아, 나 또 미쳐.(웃음) 난 그런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하는 말이 화제가 되는 것도 의식하지 않고 말을 그냥 뱉어 버리니까 사람들이 “어, 이렇게 말을 해. 용감한데” 이러는 거지. 난 용감한 게 아니라 신경을 안 쓰는 건데. 내가 ×같으면 ×같다고 그러는 것뿐이다. 그런데 왜곡이란 부분이 있거든. 미디어의 속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왜곡되는 건 이제 알겠다. 그런 건 이해가 가는데 제목만 선정적으로 뽑아놓고, 그것 참. 

최근에도 고스트스테이션의 발언이 논란을 불렀다.
그러게. 이게 무슨 연예인인지. 왜 연예란엔 안 실리고 사회면에 실리는지. 내 개인 이미지가 나빠지는 건 상관없다. 누가 착한 신해철을 원하겠냐고. 내게 맡겨진 악역에 불만은 없는데 그 말이 소모적인 논쟁이나 서로 인격을 훼손하는 키보드워리어적인 게 아니라 좀 더 생산성 있게 쓰여졌으면 좋겠다. 그게 첫 번째 희망이고, 두 번째는 음악 하는 데 방해가 안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난 입을 다물기엔 이미 늦었거든.(웃음) 정말 닥치고 음악만 할 수도 있는데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이게 내가 택한 삶의 방식이다. 결국 음악이라는 것도 내가 원하는 걸 구현하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음악도 도구고 말이나 글도 도구인데 어느 하나만 나라고 규정지을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젠 포기하고 그냥 치고 나간다. 

당시 인수위원회의 영어몰입교육을 강하게 비판했다.
좀 못되게 꼬았는데 정작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다 빠져나가고 그중 가장 못되게 꼬았던 “어느 버드헤드에서 프롬한 씽킹이냐”랑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만 남았다. 그게 반박기사가 돼 나온 거지. 하지만 난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비판 이후 인터넷에서 이렇게 열렬한 성원을 받은 적이 없다. 정말 악플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옳다는 게 아니다. 며칠 전에 진중권 씨랑 둘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절대 대중에게 도취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에 공감했다. 정말 온 국민을 적으로 돌린 것 같은 캄캄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그러던 대중이 갑자기 성원해 주는 때가 있는데, 전자일 때 낙망하지 말아야 하고 후자일 때 우쭐하거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썰’을 깐다는 게 그런 것 같다. 

지인들이 꽤나 다양하다.
진중권 씨는 그날 처음 봤다.(웃음) 살면서 서로 마주치지 않아도 저 사람은 왠지 괜찮은, 가끔 그런 사람 만나서 밥 먹고 술이라도 한잔하는 게 삶의 낙이지. 또 저놈은 나와 생각이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놈만은 인정한다, 할 때도 있다. 적이 무서울 땐 오히려 반갑다. 굳이 상대방을 초라하게 보이려 한다거나 유치해지는 적을 볼 땐 슬퍼진다. 나 참, 내가 겨우 저런 인간들하고 상대를…. 그래서 조선일보에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내 얘기가 칼럼으로 나왔을 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허점이 너무 많더라고. 이렇게 말하면 정말 건방질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글은 분질러뜨릴 수 있었다. 오죽 허점이 많았으면 내부에서도 반론이 나왔을까. 가만 놔뒀는데 욕 많이 먹던데. 

말하고 나서 좀 심했다 싶을 때도 있을 텐데.
그런 경우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매체의 특성 때문에 많이 생긴다. 인터넷 라디오라는 속성상 거기서 들었을 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표현인데, 더군다나 회원제 라디오라서 우리 편만 들으니까. 근데 그걸 고스트스테이션 밖으로 끄집어내면 “표현 수위가 너무 센 거 아니야”가 돼버리거든. 그걸 글로 옮기면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이렇게 말해도 되는거야”가 되는 거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통제하긴 힘들다. 그렇게 되면 우선 내가 움츠러들 것이고 결국 내용까지 깎여나갈걸. 이놈 비위 건드릴까 무섭고 저놈 비위 건드릴까 무서우면 그냥 음풍농월이 되고 마는 거지.



연예인? 난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별명이 마왕이다. 마음에 드나.
싫진 않은데 그렇다고 나는 마왕이야 하면서 좋아하진 않는다.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유머 감각이 첨가돼 만들어진 호칭인데 모르는 사람들에겐 권위주의적으로 비쳐질 때도 있는 것 같다. 욕 많이 먹는 거지.(웃음) 실제로 고스트스테이션 안에서는 마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줄여서 ‘뫙’ 아니면 ‘뫙이’ 이러지. 친구 별명처럼 쓰이는 건데 누가 길에서 마왕님 하고 부르면 당황스럽다. 

고스트스테이션의 청취자는 주로 어떤 세대인가.
점점 분화되고 있다. 10대 층이 예상보다 많고 50대까지 있다. 10대들은 날 굉장히 편하게 대하는데 나이든 층은 음… 경외심을 갖고 대한달까. 오히려 지금의 10대들은 라디오를 통해서 날 알게 되면서 친근하게 대하는데, 그걸 보면서 넥타이부대는 저런 어린 것들이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팬 층이 넓다면 소통이 쉽지 않을 텐데.
내 쪽에서는 편한데 자기들끼리는 약간씩 괴리감이 있는 것 같다. 또 넥스트를 통해서 신해철을 보는 분과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서 보는 분들이 다르다. 

신해철 하면 카리스마가 빠지지 않던데 의도적인 건가.
넥스트 초창기에 무대 위에서 그런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노력한 적은 있다.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연예인을 숭배의 대상으로 보면서도 한편으론 눈 아래로 깔아 버리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그때 즈음 해서는 항상 짜증이 나있었지. 아 ××, 왜 이렇게 인사를 하라는 거야. 사람 보고 굽신대라니. 우리나라 가수들은 TV에서 노래할 때 중간 간주에 왜 인사를 하래. 요즘은 없어졌다. 중간 간주에 춤춰야 하니까. 그때는 기타 치고 있는데 왜 인사를 해야 하는 거야.(웃음) 그때는 그랬고. 카리스마는… 개뿔. 심지어 내가 연예인이란 걸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20대 초반에 연예인에 적응을 못 해서 심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선택한 해결 방법이 ‘의식하지 않고 산다’였다. 뭐 신경 안 쓰면 되는 거지. 사인해 달라면 당당하게 싫다고 하고. 

팬들에게 사인도 안 해준다?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180도 다르다. 상대방이 호의를 갖고 대하면 나도 최대한 호의를 갖고 해준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내 얼굴 보니 연예인 같은데 그냥 툭 “사인이나 한 장 해줘요” 할 때. 그럼 제 노래 아는 거 있으세요? 3곡만 대봐요. 거 봐, 모르잖아요. 그러고 지나가지.(웃음) 우리 직업은 대중과 공생관계에 있다. 일방적으로 아티스트가 팬들을 호령하는 것도 아니고, 대중이 아티스트를 먹여 살리니 니가 고개 숙여, 이런 것도 아니다. 서로 돕는 관계지. 그 이상 그 이하가 다 오버다. 감사히 생각하고 보답할 수 있는 길을 찾되 굽신거리거나 목에 힘줄 필요 전혀 없다. 

스트레스 많이 받을 거 같은데. 푸는 방법이 따로 있나.
자빠져 자는 게 짱이지.(웃음) 그 다음에는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울분이나 쌓인 스트레스 푸는 데 좋은 것 같다. 책 보면서 머리를 식히거나 게임을 한다. 활달하게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라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 하지만 절대 스트레스를 술로 풀진 않는다. 기분이 나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술 마시지 않는다.



결혼하라,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한잔씩 하겠다.
집에서는 술, 담배 안 한다. 우리 딸도 그렇고 와이프 건강도 있으니까. 정말 기분 좋은 날은 안주 만들어 놓고 집에 숨겨논 술 꺼내서 좀 따라 달라고 하지. 와이프가 주는 술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그랬더니 체중조절이 안 돼.(웃음)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남달라서 특별한 게 아니고 남들과 똑같아서 특별하다. 역설적일 수도 있겠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인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게 내 인생에선 결핍이었거든. 나이 스무 살에 데뷔하고 스타가 되면서 사는 세상이 달라서였는지 친구들과 대화가 안 통했다. 그랬던 게 가정에서 생기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 다시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게 됐지. 기형적이었던 인생의 균형이 다시 채워지면서 책 100만 권을 읽어도 절대 느낄 수 없는 공부를 뒤늦게 시작한 것 같다. 

결혼 전 인생이 기형적이었다?
뭘로 보나 정상은 아니었다. 독신의 외로움을 우아하게 즐기면서 살았지. 그래서 지금은 후배들에게 그런다. 더 이상 놀아봤자 할 게 없다고 생각되면 결혼하라고. 절대 후회 안한다.(웃음) 모든 사람들이 현자가 될 수 있고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은 가족을 통해서 열려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딸아이가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있거든. 당연한 일이지만 신비하게 생각하면 매일매일 우리 집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질투하는 팬들은 없나. 스토커도 있을 법한데.
애정 표현이지 뭐. 스토커… 있긴 한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이 아니니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고 있다.  가족들이 말조심하란 말은 안 하나. 부모님은 내 삶의 방식에 대해 포기하신 것 같고.(웃음) 아버지가 항상 남들에게 미움받지 않고 튀지 않게 살라고 강조하셨으니까. 아버지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와이프도 뭐, 그냥 니 맘대로 살아봐라, 하는 것 같고.



철학과 인문학을 비웃는 미친 나라


지금까지 수많은 비판의 날을 세웠는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삶의 가치의 문제인 것 같다. 기성세대가 아랫세대들과 함께 고민하고 그들이 고민하는 걸 칭찬해 줘야 하는데, 천민자본주의에 빠져들어서 먹고사는 게 해결되지 않는 이상 다 틀린 소리라고 절규한다.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에게는 세상 무섭다고 겁을 주고 대학 들어갈 때까지 ‘넌 죽었다’고 생각하라며 삶에 대한 고민을 막는다. 꼭 기성세대가 말하는 외줄타기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나. 이러니 모든 게 엉키게 된다. 경제 어쩌고 하는데 경제논리로 봐도 우린 정말 비효율적으로 살고 있다. 삶의 고민을 얘기하는 사람에게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이란다. 철학과 인문학을 비웃고 있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철학 얘기가 나올 때 미아리 운운하나. 굉장히 무섭다. 우스개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던데, 그 무서운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두 나라를 깔보며 살아가고 있다고.(웃음) 난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해 철학을 비웃으며 살아가는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꼽고 싶다. 

그런데 정작 당신은 철학 전공(서강대 철학과 자퇴)을 포기했다.
흐흐. 전공으로서의 철학은 1학년 1학기에 때려치웠고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학문으로서 철학이 아니니까. 인생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보편적인 상식의 선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란 문제지. 우린 그 선이 저 뒤로 밀려나 있다. 내가 고스트스테이션에서 마지막 멘트로 자주 쓰는 게 “저는 이 나라가 미쳤다고 생각합니다”인데 사실상 미쳤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어떻게 그렇게 살벌하게 살지?

그럼 왜 여태껏 한국에서 살고 있나.
도망가기 싫으니까. 보편적인 발전의 단계가 이미 이행되어 있는 나라, 도망가서 이방인들 속에 섞여 살 것이냐 아니면 그 보편적인 발전이 하나도 진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내 동포들과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살 것이냐. 난 후자를 택했다. 난 귀찮은 말로 평지풍파 일으킬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지금이라도 밤무대 열심히 뛰어서 현찰 박박 긁어모은 다음 이민 가버리면 쉽잖아. 거봐, 이 나라는 간통죄 없잖아, 하면서 살면 되겠지.(웃음) 하지만 내 나라, 내 민족, 내 가족인걸. 희망을 품고 이곳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야지. 도망가면 같이 싸울 사람이 또 한 명 줄어드는 거 아닌가.



6월이면 두 아이의 아빠, 가부장은 무슨?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교육 앞에서는 대부분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시키던데. 
딸로 인해 모든 의식이 강화됐지 변화를 일으킨 건 거의 없다. 아기를 낳는다는 건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한 강렬한 확인절차였다. 시험이기도 했고. 많은 분들이 그랬다. 결혼하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바뀐 게 있다면 여자에게 상상 이상으로 잘해야 한다는 것, 내 생각보다 훨씬 높은 기준이니까 어렵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같이 가야 한다는 것, 이런 게 바뀐 거지. 집, 돈 이런 게 아니거든. 그 다음엔 자식 나봐라, 였는데 어쩌라고?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고 싶진 않다. 아이는 부부가 사랑해서 생기는 부산물이지 가족의 핵심이나 미래가 아니다. 지들은 지들의 미래가 있겠지. 우리보다 오래 살잖아. 그러니 우리가 먼저 좋은 곳에 여행 가고 좋은 걸 먹고 해야지.(웃음) 아이가 행복해야 우리가 행복해진다는 건 글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아들 생각은 없나.
와이프 배 속에 있다. 지금 6개월 됐다. 가급적 많이 낳고 싶었는데, 출산에 대한 후유증은 정말이지. 아들이라고 해서 내가 마초인 건 아니다. ‘꼭 아들을 낳아야 해’는 아닌 거지. 가부장? 그것도 별로. 우리 집은 와이프가 리더다. 이사 갈 곳 결정하는 사람이 리더잖아. 따라가면 좋다. 집안에 엄마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걸 자식과 목도하고 살면서 애하고 한패가 되고 있다. 

지금, 행복한가.
허… 설득 중이다. 행복하지 않느냐 그리고 행복하다라는 것에 대해서 너 스스로 훨씬 더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인 이상 뭔가 더 바란다. 그게 인간인 것 같다. 결국 나도 뻔한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그게 행복하고 욕망이 끓는다. 어쩌면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신해철 1968년에 태어났다. 스무 살에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 20년간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을 운영하며 싸이렌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올 상반기에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 화자로서 극을 이끌어 갈 예정이다.
[출처:M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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